한국 영화계가 남성으로 가득 차 있던 것은 비단 어제오늘만의 문제가 아니다.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에 따르면 지난해 개봉한 영화 183편의 여성 감독 비율은 22.8%에 불과했다. 이는 한국 영화계의 상당 부분을 남성 감독이 독점하고 있음을 명백히 보여준다. 남성 중심적인 한국 영화 산업 속에서 여성 창작자들은 점차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영화계에서 여성들이 활약하기 힘든 원인에는 그들에게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구조적 불균형의 영향이 크다. 영진위는 ‘2023년 한국영화 성인지 결산을 통해 영화계에 진입하고자 하는 여성들은 많지만 실질적으로 영화 제작에 참여하는 여성의 수가 적은 것이 마치 피라미드 구조 같다고 설명했다. 연극영화과 졸업생 중 여성의 비율은 62.9%로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3대 국제영화제에서 공식적으로 상영한 작품의 여성 감독도 약 40%에 달한다. 하지만 순제작비 30억 이상의 상업영화를 제작하는 여성 감독의 수는 단 2.7%에 불과하다. 이는 상대적으로 많은 예산이 드는 작업에서 여성들의 참여가 배제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남성이 지배적인 구조 속에서 여성들은 경력을 쌓기조차 힘들다. 우리나라의 극심한 성 불평등이 영화계에서도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여성 감독은 한국 영화산업의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존재다. 영진위에 따르면 국내 영화에서 사회적 소수자의 유무나 고정관념의 존재 여부 등을 평가하는 다양성 테스트점수는 지난해 7점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 5년간의 평균 점수인 10점보다 낮은 수치다. 여성 감독이 줄어드는 현상이 작품의 다양성을 재현하는 과정에도 영향을 끼쳤다고 해석할 수 있다. 영화계 내 여성 창작자들의 활약은 스크린을 통해 다양한 이야기를 그려낸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의미 있다. 한국 영화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그동안 퇴보해 온 성별 불균형을 해소해야 한다.

 영화가 상영되는 스크린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관객들이 보는 스크린 속 등장인물들은 자유로워 보이지만 스크린 뒤의 여성 감독들은 보이지 않는 경계에 고통받고 있다. 언제까지 시대착오적인 구조로 여성들의 창작 활동을 막을 텐가. 이제는 오랜 기간 여성들의 진출을 어렵게 해왔던 한국 영화계 내 불균형을 타파해야 할 때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성 감독의 처우를 개선할 법률의 제정도 이뤄져야 한다. 그것이 한국 영화산업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최선의 방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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