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4호] 2024년 4월 15일(월) 발행 매년 4월 12일은 ‘도서관의 날’이다. 이날로부터 일주일 동안 진행되는 도서관 주간에는 많은 도서관에서 기념행사를 진행한다. 올해 도서관 주간의 주제는 ‘도서관, 당신의 내일을 소장 중입니다’로 선정됐다. 오늘날 도서관은 정보 자원의 이용처를 넘어 문화 기반 시설 및 지역 공동체의 거점으로 작용하며 우리 사회의 내일을 열어가고 있다. 그러나 도서관이 가진 사회적인 의미에 비해 정부의 지원은 한참 부족하다. 정부는 올해 도서관의 발전에 필요한 예산을 삭감하기로 했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
낙마 장면을 촬영한 경주마 ‘까미’가 세상을 떠난 지 2년이 지났다. 드라마 에 출연한 까미는 낙마 장면을 위해 앞다리에 줄이 묶였고 그대로 넘어지면서 결국 사망했다. 당시 정부 차원에서 영상 및 매체 출연 동물(이하 출연 동물)을 위한 지침을 만든다는 논의가 오갔지만 그때뿐이었다. 그로부터 2년 후인 지난 1월 14일(일) 방영된 드라마 에서 또다시 동물권이 무시되는 장면이 연출돼 논란이 일었다. 출연 동물의 보호를 위한 논의는 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1995년에 개봉한 할리우드 영화
우리 이름의 첫 글자인 성(姓)에는 성(性)차별의 흔적이 숨어있다. 정의당 이은주 의원이 2020년 법원행정처로부터 제공받은 자료에 따르면 혼인신고 수 대비 자녀가 어머니의 성을 따르겠다고 신청한 건수는 약 0.2% 수준에 불과했다. 많은 사람이 부계 성을 따르게 된 이유는 자녀가 기본적으로 아버지의 성을 물려받도록 하는 현행 제도 때문이다. 이런 제도는 가정 내의 성별 불평등을 초래하므로 개선이 필요하다. 자녀가 여성의 성을 따르기 위한 절차는 남성의 성을 따르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다. 민법 제781조 1항에 따르면 자녀에게 모계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니”. 이는 조선시대 도적 홍길동이 남긴 말이다. 더 이상 우리 사회에 신분제가 남아 있진 않지만 여전히 제 이름 그대로 부를 수 없는 것이 있다. 지난달 3일(금) 유튜브에 게시된 영상은 ‘유모차’라는 말을 자막에서 ‘유아차’로 표기했다는 이유로 논란이 됐다. 이를 본 일부 남초 커뮤니티 는 유모차라고 말한 걸 유아차로 써야 할 이유가 있 냐며 “제작진 중에 페미니스트가 있다”며 마녀사냥을 시작했다. 이들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국립국어원 온라인가나다 질문 게시판을 스팸 광고
국내 프로그램들은 현재 ‘자극 전쟁’ 중이다. 특히 최근 SBS 드라마 은 고등학생이 교실에서 출산하는 장면을 방영하며 화두에 올랐다. 자극적인 소재를 여과 없이 담아내는 본 작품은 일부 회차를 제외하고 ‘15세이상시청가’라는 연령 제한을 두고 있다. 성인인 필자도 보기 힘든 장면을 지상파에서 공공연하게 방송하고 있는 현실에 의구심이 든다. 현재 우리나라는 방송법으로 프로그램을 시청할 수 있는 연령을 지정하고 있다. 방송법 제33조 4항에는 ‘방송사업자는 아동과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하여 방송프로그램의 폭력성 및 음란성
"너 페미냐?". 이는 일부 남성들이 커뮤니티에서 페미니스트를 비꼬기 위해 쓰는 말이다. 또 현재 한국 게임 산업계에서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여성 노동자를 배척하기 위해 내뱉는 말이기도 하다. 이른바 '페미니스트 사냥'은 2020년 카카오게임즈 모바일 게임 '가디언 테일즈'가 진행한 공모전에서부터 시작됐다. 게임 이용자들이 공모전에 참여한 여성 작가의 페미니즘 성향을 문제 삼자 카카오게임즈가 여성 참가자의 당선을 취소한 것이다. 이처럼 '성평등을 위해 성차별을 지양하는' 페미니즘을 마치 비도덕적인 사상으로 몰아가는 것이 게임 업계의
"여자가 모텔에는 왜 따라갔나요?". 이는 2021년 8월 성폭력 사건의 검찰 조사 중 검사의 발언이다. '성폭력 범죄 등 사건의 심리‧재판 및 피해자 보호에 관한 규칙' 제2조에는 "검사, 법원, 변호인 등의 소송관계인은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가 성적 수치심 또는 공포감을 느낄 수 있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하지만 이를 무시한 채 여전히 수사 과정에서 여성에게 2차 가해를 일삼는 사법부의 태도가 개탄스럽다. 보호받아 마땅할 피해자에게 경찰이 2차 가해를 하는 경우는 허다하다. '2022년 한국성폭력
학부모의 악성 민원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서이초등학교 교사의 49재였던 지난 4일(월) 여의도 국회 앞에 수많은 교사가 모였다. 최근 교사들이 숨지는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자 이에 분노한 동료들이 거리로 나온 것이다. 분개한 교원들은 거리에 모여 교권보호 합의안의 의결과 서이초 교사 죽음의 진상 규명을 외쳤다. 선생님들이 학교에서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는 사회.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교사들은 지난 4일(월)을 ‘9·4 공교육 멈춤의 날’로 지정해 세상을 떠난 동료들을 추모했다. 당일 현장 체험학습을 신청해 자녀를 등교시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기’. 불가능할 정도로 어려운 일을 의미하는 말이다. 예전부터 청년들의 취업난은 이 속담으로 비유되며 끊이지 않는 사회 문제로 남아있다. 바늘구멍처럼 좁은 취업의 문은 여성들에게 더 가혹하다. 채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성차별이 심심찮게 뉴스로 보도되는 것만 봐도 그렇다. 언제까지 성별을 이유로 그들의 찬란한 미래를 막을 텐가? 기업의 고용 과정에서 남성을 선호하는 문화는 공공연하게 퍼져있다. 지난해 11월 조선일보와 사람인이 721개 기업의 채용 담당자에게 설문한 결과에 따르면 ‘채용 시 선호하는 성별이 있다’
‘강약약강’. 강한 자에게는 약하게, 약한 자에게는 강하게. 연인 관계에서 폭력을 행사하는 남성들은 자신보다 물리적 힘이 약한 여성 앞에서만 한없이 강해지는 듯하다. 교제 폭력의 수많은 피해 사례가 언론에 보도되고 있지만 유사한 사례는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강약약강’의 비겁함에서 벗어나야 할 때다. 폭력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될 수 없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5월 26일(금) 서울 금천구에서 30대 남성에 의해 여성이 살해되는 일이 발생했다. 피해자 A씨는 이별 통보 이후 전 남자친구의 폭력에 시달려 온 사
역사 교과서의 첫 단원은 늘 우리가 역사를 배워야 하는 이유로 시작한다. 과거의 문제를 배움으로써 오늘날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말자는 것이다. 그러나 그 배움이 무색하게 언론 탄압의 역사는 끊임없이 되풀이되고 있다. 2017년 정부는 권력층을 비판하는 언론을 압박했다. 공영방송의 경영진은 권력이 다루기 쉬운 친정부 인사로 바뀌었다. 이에 언론인들은 거리로 나와 언론은 정부의 것이 아니라고 호소했다. 이런 일들이 오늘날 다시 재현되고 있다는 사실이 심히 우려스럽다. “MBC와 KBS의 주인은 정권이 아니다”. 지난달 14일(월) 공영
“오늘 자로 대한민국에서 소아청소년과라는 전문과는 간판을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3월 29일(수) ‘소아청소년과(이하 소청과) 폐과와 대국민 작별 인사’ 기자회견에서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임현택 회장이 했던 말이다. 이것이 뛰어난 의료체계가 구축돼 있다고 하는 나라에서 일어난 일이 맞는가. 대한민국에서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환경은 그야말로 파란만장하다. 이들의 폐과 선언은 병원 간판에서 소청과라는 전문과목을 지워버린다는 의미다. 현재 건강보험공단과 환자가 부담하는 진료수가는 30년째 동결 상태다. 소아·청소년 진료만으로
‘빠르고 간결한’ 사회에서 지난 시간을 기억하는 일은 좀처럼 쉽지 않다. 모두가 각자의 목표를 달성하기 바쁘고 이를 위한 노력의 가치도 값을 매겨 숫자로 환산하니 말이다. 어제는 금방 잊고 내일을 기약하는 것은 어느새 분주한 사회 속 사람들의 획일적인 모습을 만들어 냈다. 필자에겐 지나간 시간을 기록하는 오래된 습관이 있다. 매일 일기를 쓰고 소중한 순간을 사진이나 영상으로 남겨 하루를 기억하곤 한다. 혹자는 이를 두고 과거에 매인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필자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 ‘기록’은 단순히 과거의 기억
최근 크고 작은 갑질 관련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을 보고 있자니 갑질의 형태는 끝이 없다는 생각에 한숨만 나온다. ‘갑질’이라는 말은 한 기업의 대표가 직원들에게 폭언과 폭행을 한 것에서 유래됐다. 그러나 이제는 더 다양한 분야와 상황에 쓰이는 익숙한 표현이 돼버렸다. 우리 사회에 갑질이 이토록 만연해진 이유는 무엇일까. 경쟁에서 탈락한 사람들을 모두 패배자로 치부해 버리는 사회 분위기는 사람들이 서로를 ‘갑’과 ‘을’로 규정하게 만들었다. 경쟁에서 이기면 ‘갑’이 돼 타인을 부릴 수 있지만 져서 ‘을’이 되는 순간
지난달 25일(토) 정순신 변호사가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된 지 하루 만에 낙마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아들의 학교 폭력 전력 때문이었다. 정 씨 아들의 무자비한 폭력에 시달리던 피해자 A군은 평생 상처를 안고 살아가게 됐다. 반면 가해자 정 군은 지난 일은 잊은 듯 명문대에 진학해 승승장구 중이다. 이처럼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친 가해자가 잘 먹고 잘사는 상황은 도대체 언제까지 지속돼야 할까. 정 군이 받은 학교 폭력 징계 기록은 그가 강제 전학을 간 학교를 졸업하기 직전 삭제됐다. 그의 사례처럼 학교폭력자치대책위원회 심의에서 ‘
5분, 누군가에겐 찰나의 순간이지만 또 다른 이에겐 목숨을 건지는 ‘골든타임’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5분의 기적은 24시간 쉬지 않고 돌아가는 응급실 주변에 사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축복이다. 놀랍게도 전국에 응급의료기관이 없는 비수도권 시군구는 32개에 달해 골든타임을 놓치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는 지방에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균등한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의 실상을 보여준다. 과연 그들은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정당히 ‘건강할 권리’를 영위하고 있는 것일까? 지방민이 건강할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은 이뿐만이 아
2018년 12월 태안 화력 발전소에서 설비 작업을 하던 노동자 고(故) 김용균 씨가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사망했다. 현장의 빈약한 안전 체재가 원인이었으며 사고의 책임 소재는 여전히 불명확한 상태다. 사고 소식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자 우리 사회는 노동권을 위해 행동하는 듯 보였다. 정부가 사고 현장 점검에 나서고 긴급 대책을 발표하는 등 산재 예방을 위한 조치를 취할 것처럼 움직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9일(목) 보령 화력 발전소에서 노동자가 추락사하는 중대 재해가 재발했다. 앞선 태안 화력 발전소 사고의 재판이 마무리되지도
우리는 요약과 자극의 시대에 살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영상마저 1분으로 압축시킨 숏폼이 대세가 됐기 때문이다. 숏폼을 향한 많은 이들의 열광은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일지도 모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간 단축은 경제적 이익으로 환산된다. 이런 세상에서 사람들은 1분 안에 최대한 많은 정보를 습득할 수 있는 콘텐츠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필자는 이토록 간편한 영상이 우리를 편파적이고 자극적인 정보에 익숙하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우리가 숏폼과 같은 짧은 콘텐츠를 볼 땐 의도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집중력이 발휘된
생리라는 말 대신 불리는 ‘그날’, ‘마법’, ‘대자연’. 생리를 생리라 부르지 못하는 여성들은 이미 홍길동이 돼 있었다. 생리를 암묵적으로 금기시하는 사회가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생리대를 빌릴 때도 이를 몰래 받기 위해 ‘생리대 숨기기 대작전’을 펼치고 생리가 민망하다는 이유로 생리대를 감출 수 있는 파우치까지 보편화됐다. 나아가 여성을 위한 생리대 광고마저도 이를 제대로 드러내지 않는다. 제품의 흡수력을 보여줄 때 생리혈을 파란색이나 무색으로 대체해 표현하는 것이 마치 당연한 듯 받아들여진다. 이렇게 강요되는 침묵과
요즘은 그야말로 대학생들이 살아남기 힘든 시대이다. 코로나19로 그들은 취업난을 직격탄으로 맞이할 수밖에 없었고 올 상반기 기준 청년 체감 실업률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계속해서 위축되는 취업 기회에 대학생은 늘 스스로 옥죄며 사는 듯하다. 사회가 만들어놓은 틀에 맞추기 위해 자신을 한없이 깎아내리며 말이다. 일명 ‘취준생’이라 불리는 학생들이 시험에 계속 떨어지며 연신 불합격의 쓴맛을 맛보는 동안 그들의 내면에는 수많은 상처가 생긴다. 스펙을 꾸역꾸역 채우며 사회가 원하는 자신을 만들고 있을 때 그들의 마음속은 끊임없는 자기 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