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출처·혼례대첩 공식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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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본 | 하수진
연출 | 황승기, 김수진
편성 | KBS2


 “조선은 응당 여인들의 나라지요”. 드라마 <혼례대첩> 속 정경부인이 자신을 소개하는 문장이다. 사극 드라마에서 이와 같은 여성 중심적인 대사를 듣기란 쉽지 않다. 주로 사극의 배경이 되는 조선시대에는 대부분의 여성이 남성의 명예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혼례대첩>은 지금까지의 사극과는 다르게 여성들이 이야기를 주도한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드라마의 주인공인 정순덕(조이현)은 낮에 발이 다 보이는 한복을 입고 진한 화장을 한 채 연분을 이어줄 남녀를 찾아다니는 중매쟁이다. 하지만 그는 좌상 댁의 과부 며느리라는 이유로 밤에는 밖을 나갈 수 없고 외부인과 함부로 말을 섞지 못한다. 이런 순덕의 이중생활은 시청자에게 재미를 선사한다. 순덕에게서 실제 조선시대였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여성의 모습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연분이 맞는 남녀를 발견하면 그들을 이어주기 위해 중매인으로서 최선을 다한다. 그러던 순덕에게 어느날 맹 박사네 세 딸을 모두 혼인시키라는 어명이 내려진다. 그는 세 딸과 남성들이 사랑에 빠지는 순간을 만들기 위해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결국 혼인을 성사시킨다. 당대 사회가 여성에게 조신함을 강요했지만 순덕은 사회의 요구에 순응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신분과 성별에 얽매이지 않는 그의 당찬 모습은 시청자에게 또 다른 재미 요소가 된다.

 드라마에서는 순덕의 시어머니인 박소현(박지영)도 진취적인 여성으로 묘사된다. 극 중 8화에서 소현은 순덕에게 양반집 며느리로서 집안의 재산을 관리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이는 예전의 사극 드라마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장면이다. 과거 사극에서 여성은 주로 집 안에만 머물며 가사 노동을 담당하고 남편을 보필하는 역할로 등장했다. 이와 달리 집안의 일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소현의 모습은 우리 사회에 내재한 여성에 대한 편견을 깬다. 또 소현이 주로 누군가의 아내나 엄마로서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그는 드라마에서 박소현이라는 이름을 갖고 가문에 대한 자부심이 넘치는 인물일 뿐이다. 이처럼 해당 드라마는 조선시대 여성들을 저마다 고유한 특색을 가진 인물로 그려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나아가 사극에서도 여성 등장인물들이 다양한 역할을 맡을 수 있음을 증명한다.

 2000년대 이후 허구의 상상력에 현대적 감각을 접목한 퓨전 사극이 꾸준히 등장하고 있다. 그중 <혼례대첩>은 퓨전 사극의 장점을 살려 조선시대 여성들의 능력과 적극성을 마음껏 보여줬다는 점에서 단연 돋보인다. 이제 사극 속 여성 인물들은 정절을 지키고만 있지 않다. 반복되는 남성주의 사극에 질렸다면 <혼례대첩>을 통해 조선시대 여성들이 보여주는 매력에 빠져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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