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대학이 산업인재 양성소로 전락한 지금, ‘내 학과를 빼앗긴 학생들이 있다. 학령인구 감소로 인한 대학 구조 개혁은 피할 수 없다지만 학생 의견이 완전히 배제된 학과 통폐합은 학내 민주주의 위기를 초래한다. 비민주적인 학과 개편을 막고 대학의 본질을 되찾기 위해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아봤다.

 

대학가의 연이은 학과 신설·통폐합

 최근 대학가에 학사 구조 개편 물결이 일고 있다. 대학들은 몇 년 전부터 학령인구 감소와 학과 경쟁력 약화를 이유로 비인기 학과를 없애고 유사 계열 학과를 합쳐왔다. 윤석열 정부가 대학의 자율성을 높이고 첨단분야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대학규제 완화 정책을 시행하면서 학과 통폐합은 가속화되고 있다. 학과 증설 조건도 완화돼 특히 첨단분야를 중심으로 새로운 학과를 설립하는 대학도 늘어나는 추세다. 이에 대해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이하 전대넷)는 최근 연이은 학사 구조 개편에 부정적인 측면이 있음을 지적했다. 전대넷 김민정 집행위원장은 정부의 규제 완화로 인해 이제는 학과를 신설할 때 교원확보율 같은 학생들의 학습권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요건마저 보장되지 않는 상황이라며 교수 채용 계획 없는 학과 신설 등 겉보기에만 그럴듯한 개편이 계속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현재 대학은 학과 구조조정 과정에서 학내 구성원의 의사를 충분히 반영하지 않고 있어 이에 따른 학생들의 피해 사례가 만연한 상황이다.

 지난해 본교에 신설된 바이오헬스융합학과(이하 바융과)는 기존의 생명환경공학전공(이하 생공)과 유사한 교과과정을 가졌다는 점 때문에 많은 학우의 우려를 샀다. 게다가 일부 생공 교수가 바융과로 이전하면서 학우들은 학습권을 침해당할 위기를 겪기도 했다.(본지 689호 참조) 한편, 지난 3월에는 독어독문학과와 불어불문학과가 글로벌ICT인문융합학부로 개편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는 개편과 관련한 학우들의 의견을 묻지 않은 결정이었다.

 세종대학교(이하 세종대) 또한 첨단학과를 신설함에 따라 타 학과의 정원을 감축하는 과정에서 학내 구성원들의 불만 사항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세종대에서 2024학년도에 입학 정원이 줄어들 예정인 학과는 역사학과, 행정학과 등 총 17개다. 그중 역사학과와 행정학과 등이 정원 감축과 관련해 대학 본부 측의 충분한 의견 수렴이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역사학과는 세종대 내 최소 인원 학과로 정원이 줄어들면 장기적으로는 학과의 존폐까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점에 불안을 호소하는 상황이다. 해당 학과는 학생들의 학습권 침해 여부에도 주목하고 있다. 정원 감축이 이뤄져 강의 개설을 위해 필요한 인원을 채우지 못하면 상당수의 강의가 폐강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과 측은 학교로부터 학습권 보장 대책에 대해서 설명받지 못했다.

 한국외국어대학교(이하 한국외대)에서도 지난해부터 학과 신설과 기존 학과 존립을 두고 학교와 학생들 사이에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올해 2월 한국외대 전체교수회의에서 발표된 신설학부 구상계획에 따르면 한국외대는 서울캠퍼스에 첨단기술을 다루는 학과를 신설하고 글로벌캠퍼스에 글로벌문화산업대학 AI융합대학 디지털콘텐츠학부 AI데이터융합학부 등 총 2개의 단과대학과 6개의 학과를 개설할 예정이다. 신설학과 설립에 필요한 정원은 기존 학과의 입학 정원을 감축하고 유사·중복학과()를 폐과존치해 확보하게 된다. 그러나 학생들은 기존 학과의 정원이 감소하면 학내에서의 입지 역시 줄어들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한국외대에서는 일부 학과가 폐과존치되는 것에 대해 지난해부터 많은 학생의 반발이 있는 상황이다. 학과 신설에 따른 교수 인력 확보 측면에서도 학생들의 피해가 예상된다. 본교와 마찬가지로 기존 학과의 교원이 신설 학과로 옮겨 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산업 인재양성 위한 교육부의 대학 규제 완화'

(사진 출처·교육부) 2020~2022년 전국4년제 대학 학과 통폐합 현황
(사진 출처·교육부) 2020~2022년 전국4년제 대학 학과 통폐합 현황

 교육부의 고등교육 정책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대학의 자율화. 대학 운영에 대한 규제를 풀어 대학이 스스로 학령인구 감소 등으로 인한 위기를 극복하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이에 교육부는 지난해 12대학설립·운영규정전부개정안(이하 개정안)의 입법을 예고하며 대학 운영에 대한 규제를 대폭 완화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2024학년도 학생정원 조정계획을 발표해 대학이 자체적인 구조조정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자유로워진 학과 통폐합

 이런 규제 완화 정책에 따라 대학은 총 입학정원 내에서 학과 정원을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게 됐다. 기존에는 대학이 총 입학정원 범위에서 학과 등을 신설·통합·폐지하거나 입학정원을 조정하려면 교원확보율을 전년도 이상으로 유지해야 했다. 그러나 교육부는 지난해 8전년도 교원확보율직전 3개년도의 평균 교원확보율중 낮은 비율 이상으로 교원확보율을 유지하면 된다고 기준을 완화했다가 12월 개정안에서 교원확보율 기준을 완전히 없앴다. 따라서 대학은 아무런 규제 없이 자유로운 학과 개편 및 통폐합을 단행할 수 있다.

4대 요건 없는 첨단학과 신설 및 증원

 첨단기술 분야 학과 신설과 학생정원 증원도 쉬워졌다. 기존에는 교사(대학시설 및 건물) 교지(교육을 위해 마련한 토지) 교원(교수·부교수·조교수·겸임교원) 수익용기본재산(학교법인이 보유한 수익용 기본재산)4대 요건을 완전히 충족해야만 정원을 늘릴 수 있었다. 지금은 첨단기술 분야에 한해 이런 4대 요건을 모두 갖추지 않더라도 교원확보율 기준만 충족하면 정원을 증원할 수 있게 됐다. 지방대학은 모집난을 고려해 첨단기술 분야를 포함한 전 분야에서 해당 내용이 적용된다. 국립대학의 경우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등의 첨단분야 및 해기사(海技士)와 같이 교육부 장관이 고시하는 특정 분야 관련 학과를 증설하거나 학생정원을 증원할 시 확보해야 하는 교원의 수도 80%에서 70%로 낮췄다.

반도체 인재양성이 제1 목표

 교육부의 반도체 등 첨단기술 분야 인재양성 정책에 따라 2024학년도 일반대학의 첨단분야 입학정원이 1,829명 늘어난다. 이 중 수도권 대학은 19개 학과에서 817, 지방대학은 31개 학과에서 1,012명이 증원된다. 교육부가 수도권 대학의 입학정원 증원을 허용한 것은 약 20년 만이다. 증원 대상 분야로는 반도체 분야(14개 학과, 654) 인공지능 분야(7개 학과, 195) 소프트웨어(SW)통신 분야(6개 학과, 103) 에너지신소재 분야(7개 학과, 276) 미래차로봇 분야(11개 학과, 339) 바이오 분야(5개 학과, 262)가 선정됐다. 교육부는 이번 정원 배정을 시작으로 2027년까지 반도체 분야 학부 정원을 2,000명가량 증원할 계획이다.


 

산업 인재양성부작용, 대학의 진정한 의미는?

 '첨단분야에 초점을 둔 고등교육 정책에 대해 교육부가 지역 간 대학 격차나 비첨단분야 학과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전국대학노동조합 김병국 정책실장을 만나 현재의 고등교육 정책이 어떤 문제들을 초래하고 있는지 알아봤다.


 윤석열 정부는 고등교육에서 첨단산업 분야의 인재양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회에 필요한 인재를 배출하는 것도 대학의 역할이기에 해당 목표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진 않아요. 문제는 고등교육 정책마저 산업계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는 방향으로 마련돼 대학이 취업 교육 기관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정부가 대학을 산업계의 하부 구조로 만들고 있는 것이죠. 정부의 지원이 첨단분야에서 요구하는 학문이나 학과 위주로 이뤄지는 상황도 우려됩니다. 상대적으로 지원이 부족한 기초 학문은 소멸할 수도 있어요. 다양한 연구의 밑바탕이 되는 학문이 사라진다면 국가는 성장하기 어렵습니다. 각 학문이 갖는 중요성을 간과하고 산업만을 강조하는 대학 정책은 매우 위험해요. 따라서 기초 학문을 안정적으로 지원하고 육성할 방안이 필요합니다. 해당 학문에 종사하는 이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연구할 수 있도록 재정을 지원하는 방식으로요.

 첨단산업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정책은 지방 대학의 존립도 위협하고 있습니다. 현재 수도권 대학들은 학교당 학생의 수가 지방대학에 비해 훨씬 많은 편인데요. 과밀화된 수도권 대학은 학과를 신설할 때 필요한 교지, 교원 등의 기준을 충족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교육부의 각종 규제 완화로 교원확보율만 충족하면 첨단분야 학과를 증설할 수 있게 됐고 수도권 대학의 입학정원도 늘어났죠. 학령인구가 줄어 지방대학은 이미 소멸 위기를 겪고 있는데 교육부는 수도권 대학에 유리한 정책을 펴고 있습니다. 이는 정부가 주장하는 지역균형발전이나 지방대학 살리기와 모순돼요.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앞으로 문을 닫는 지방대학이 많아질 겁니다.

 대학을 단순히 취업을 위해 거쳐 가는 곳으로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대학의 역할은 매우 다양해요. 교육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지역 사회의 발전을 돕고 문화의 중심지가 되기도 하죠. 정부는 대학이 가진 역할과 기능을 다각도에서 고려해야 합니다. 그래야 고등교육에서 인재양성과 기초 학문 발전이라는 두 개의 중요한 목표가 적절히 조화될 수 있어요.

 

이 내용은 전국대학노동조합 김병국 정책실장과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기자가 재구성했음을 밝힙니다.


 

무분별한 학과 통폐합 막는 제멋대로 학과폐지 방지법'

(사진제공·김창인 대표(청년정의당)) 지난 2일(화) ‘제멋대로 학과폐지 방지법’ 발의 기자회견이 개최됐다.
(사진제공·김창인 대표(청년정의당)) 지난 2일(화) ‘제멋대로 학과폐지 방지법’ 발의 기자회견이 개최됐다.

 현 정부의 고등교육 정책하에서 학생들의 동의 없이 행해지는 무분별한 학과 통폐합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낀 이들이 있다. 학생들의 추가적인 피해를 막고자 제멋대로 학과폐지 방지법을 발의한 청년정의당 김창인 대표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제멋대로 학과폐지 방지법은 어떤 목적으로 발의한 법안인가요?

 '제멋대로 학과폐지 방지법은 현 고등교육법을 일부 개정한 것인데요. 대학 본부에서 학과 또는 학부를 통폐합할 경우 해당 학과 또는 학부에 소속된 재적 학생 과반수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대학의 핵심 구성원인 학생들이 학과 구조조정 과정에 대학 운영의 주체로서 참여할 수 있도록 한 것이죠. 한마디로 대학 내 민주주의를 강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발의했습니다. 또한 저는 대학 시절 학과 통폐합을 저지하기 위해 투쟁했던 경험이 있어요. 당시 저는 통폐합을 막아내지 못했기에 지금 비민주적 학과 통폐합에 저항하고 있는 학생들에게는 승리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고 싶었습니다. ‘내 학과가 사라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학생들에게 필요한 법안을 마련하고자 했어요.

앞서 학과 통폐합에 저항한 경험이 있다고 말씀하셨는데요. 당시의 구체적인 상황이 궁금합니다.

 제가 다니던 중앙대학교는 두산이라는 대기업이 인수한 이후 대학 기업화의 선두에 서 있었습니다. 기업 총수였던 이사장은 대학은 교육이 아닌 산업이라는 가치관을 갖고 대학을 경영하겠다고 했죠. 따라서 취업률이 낮은 비인기 학과들을 통폐합했습니다. 저는 당시 기업식 학과 구조조정에 맞서 대학은 기업이 아니다라는 내용의 현수막을 들고 시위했어요. 그 대가로 세 차례의 징계 조치를 받기도 했죠. 긴 싸움 끝에 결국 대학을 그만둔다는 대자보를 붙이고 자퇴했습니다. 저는 대학이 학문을 배우고 가르치는 공간으로서 부끄럽지 않은 공간이 되기를 기대했던 겁니다.

제멋대로 학과폐지 방지법을 발의하는 과정에서 함께 한 분들은 누구인지 궁금합니다.

 '제멋대로 학과폐지 방지법발의에는 류호정 의원 장혜영 의원 심상정 의원 등 6명의 정의당 의원들과 기본소득당 더불어민주당 진보당 무소속 등의 의원들이 동참해주셨습니다. 류호정 의원과는 처음 법안을 준비할 때부터 함께 했어요.

법안을 준비하며 알게 된 학과 통폐합 사례를 소개해 주세요.

 정의당 류호정 의원을 통해 제공받은 교육부의 2020년부터 2022년까지의 학과 통폐합 사례를 분석한 결과 지난 3년간 발행한 학과 통폐합은 795건에 달하는데요. 학과의 정체성이 완전히 달라짐에도 두 개 이상의 학과를 통합한 사례가 다수 발견됐습니다. 신라대학교는 2022년에 화학공학과와 에너지환경과학과를 합쳐 소방안전학과를 만들었어요. 2021년 삼육대학교는 중국어학과와 일본어학과를 항공관광외국어학부로 통합했고요. 이처럼 전혀 다른 성격의 학문을 통합하면서 정체불명의 학과를 만들어 내는 일이 대학가에서 일종의 유행이 돼버렸습니다.

제멋대로 학과폐지 방지법에 기대하는 점은 무엇인가요?

 '제멋대로 학과폐지 방지법이 제정된다고 해서 학과 통폐합을 전면적으로 차단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학과 통폐합이 불가피하다면 합리적인 이유를 학생들에게 제시하고 설득해야 하죠. 이 법을 통해 그동안 대학 본부 혹은 이사회의 일방적인 결정으로 진행됐던 통폐합 과정이 민주적으로 변화하길 기대해요.

법안이 제정되고 시행되기까지 앞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나요?

 국회 내에서 법안이 통과돼야 합니다. 냉정하게 보면 지금으로선 통과가 어려워요. 하지만 제멋대로 학과폐지 방지법에 대한 학생들의 요구가 있다면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전국에서 학과 통폐합을 겪고 있는 학생공동체들을 만나 간담회를 진행하고자 해요. ‘제멋대로 학과폐지 방지법통과라는 공동의 목표를 바탕으로 법안 통과에 대한 학생 사회의 여론을 만들기 위해 힘쓸 생각입니다.

 

이예림 기자 swpress209@hanmail.net

한채연 기자 swpress20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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